완도에서 본 나무를 진도에서 다시 만나다
영광에서 한 시간 달려 목포, 다시 한 시간 달려 진도, 군내버스로 40분 이동하여 동석산에 도착.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명산이지만 워낙 외진 곳에 있어서 대개는 산악회를 이용한다. 그래서 나는 역으로 혼자서 이곳에 오리라 다짐한 터였다. 드디어 때가 왔다. 주중이어서 나 말고는 여기 아무도 없다.

암릉이 멋지고 바다를 내다보는 경관이 수려하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나무들이 이토록 다채로울 줄이야. 물론 나도 안다. 동석산이 특별히 식생이 뛰어난 곳은 아님을. 운림삼방을 끼고 있는 첨찰산이나 보길도가 난대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겠지. 나도 동석산을 갈까 첨찰산을 갈까, 아니면 이틀을 머물며 다 볼까 고민했다. 그런데 웬걸, 나무를 관찰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곳이다. 지금 내 수준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작년 이맘때 목포와 완도에서 본 나무들을 복습하는 기회였다. 삼학도에서 본 폭나무를 들머리에서 만난다. 예덕나무, 참식나무도 있다. 돈나무, 마삭줄, 다정큼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다들 향이 좋기로 유명한데 마삭줄은 내가 기억하는 만큼 향이 강하지는 않다. 산지여서 그런가, 아니면 막 피기 시작해서 그런가. 다정큼나무는 여기서 보리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바닷가 산의 바위지대에 주로 서식한다고 한다. 완도에서 보았던 윤노리나무도 있고, 생달나무도 참식나무보다 잎이 길쭉한 것으로 알아보았다. 꽃이 막 열리기 직전이다.

잎이 작고 잎맥이 두드러지는 키 작은 나무가 계속 보이는데 소사나무임을 알아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바닷가 산지 하면 예덕나무와 소사나무가 대표주자이건만. 쇠물푸레나무도 잎이 유난히 짙어서 헷갈렸다. 바위를 좋아하는 쇠물푸레답다. 굴피나무, 사스레피나무도 확인(굴피는 새잎에 털이 있다). 청미래덩굴이 이곳에 유난히 많다. 밤나무도 자주 보이고 생강나무도 많다. 뜻밖이었던 것은 이팝나무를 만난 것. 산지에서 이팝나무는 처음 본다. 동악산에서 쥐똥나무를 본 것과 비슷한 충격이다.

아는 나무가 계속 눈에 들어오는 법. 하지만 이날 야생에서 처음 만난 나무도 있다. 머귀나무와 보리밥나무, 새비나무다. 머귀나무는 가시를 달고 있는 우상복엽으로 동정했다. 굴피보다 잎크기가 작고 운향과답게 향이 있다. 보리밥나무는 한참을 생각했다. 어디선 본 듯한 잎모양인데 뭘까 생각하다가 보리수나무가 떠올랐다. 잎크키가 훨씬 크고 덩굴성이다. 보리수, 뜰보리수와 달리 가을 늦게 꽃이 피고 봄에 열매가 익는다. 비슷한 나무로 보리장나무가 있는데 잎이 둥글넓적하므로 보리밥나무다. 새비나무는 현장에서는 알아보지 못하고 나중에 알았다. 작살나무와 비슷한데 잔털이 밀생한다는 정보만으로는 아직 꽃이 나오기 전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 새비나무를 알아보기 역부족이었다.

봄에는 길마가지나무, 분꽃나무, 가을에는 층꽃나무가 피고, 다음 달이면 광나무, 돌가시나무, 후피향나무도 핀다고 하니 암릉으로만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산이다.
by 비창 | 2019/05/23 20:22 | -오르다 | 트랙백 | 덧글(0)
철쭉 대신 아직은 진달래
5년 전 이맘때 올랐던 소백산을 다시 걷는다. 그때는 새밭에서 늦은맥이재로 올라 국망봉, 비로봉을 거쳐 천동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이번에는 천동계곡에서 비로봉, 국망봉까지 가서 초암사로 내려왔다. 단양에서 영주로,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대장정이다.

날짜는 고작 사흘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꽃샘추위로 인해 올해 봄꽃들이 일주일 이상 늦다. 기대했던 꽃은 아직 소식이 없고 의외의 풍경들을 만난다. 할미밀망, 물참대는 이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괴불나무, 노린재나무, 두루미꽃, 풀솜대는 망울 상태다. 대신에 노루삼이 아직 남아 있다. 노루삼은 큰 산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나는 녀석이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상태의 꽃을 만나본 적이 없다. 병솔처럼 생긴 꽃망울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그리고 이렇게 오묘한 향을 풍기는 줄도 몰랐다. 소백산의 깃대종 모데미풀도 절정이다. 모데미풀은 태백산, 청태산, 광덕산에서도 만난 적이 있지만 노란색 수술과 암술을 이렇게 눈여겨 들여다본 적이 없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보고 다녔던 걸까.

능선에 오르자 친구도 감탄하고 나도 감탄한다. 여기는 이제야 봄이 오기 시작했다. 골짜기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 넉넉하게 길게 뻗은 능선 너머로 평지가 보이고 마을이 보인다. 소백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큰 산이지만 지리산과 덕유산처럼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의 느낌이 아니라 세상을 품에 담고 있다.

진달래가 진분홍색으로 우리를 맞는다. 등산로 옆으로 전에 노랑무늬붓꽃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노랑제비꽃이 그 자리를 많이 잠식했다. 개체수가 많지는 않지만 노랑무늬가 유난히 짙다. 능선의 꽃들은 하나같이 강렬한 색을 자랑한다. 제비꽃, 양지꽃, 피나물, 금괭이눈까지.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바람꽃이 전혀 없고 박새가 사면을 점령했다. 오늘도 백작약을 만날까 그토록 두리번거렸지만 정성이 부족했는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닥나무가 종종 보인다. 시닥이 있으면 매발톱나무도 있을 듯한데.

국망봉에서 한참을 놀다가 초암사로 넘어간다. 영주 방면은 경사가 급해서 계단과 돌길을 한참 내려가야 한다. 이쪽은 야생화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계절이 살짝 늦는 것 같다. 서쪽으로 계곡이 난 단양보다 남쪽으로 이어진 영주가 계절이 늦다니. 쇠물푸레나무 꽃이 여긴 아직 한창이다. 귀룽나무가 많다. 천동계곡도 귀룽나무가 많지만 이쪽 계곡에 더 많다. 매화말발도리도 널려 있고 철쭉도 능선을 제외하면 이쪽이 더 많다.
by 비창 | 2019/05/14 23:33 | -오르다 | 트랙백 | 덧글(0)
경주의 보물, 시부걸 계곡
올해 첫 야생화 나들이를 이제야 떠난다. 복수초와 변산바람꽃, 노루귀가 이르면 2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므로 두 달가량 늦은 셈이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해오던 것이 살짝 지겹기도 하고 슬슬 야생화 졸업을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토함산 북쪽 자락의 시부걸에서 올라가는 길은 남쪽 지방에서는 야생화 탐방지로 유명한 모양이다. 내가 이곳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애기송이풀과 노랑무늬붓꽃이 이곳에 자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노랑무늬붓꽃이야 보현산과 팔공산에도 살고 있으니 토함산에도 있을 수 있지만 애기송이풀은 가평, 포천 등 경기도 북쪽에 주로 서식하기에 궁금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부신 초록이 나를 맞이한다. 벌써 잎이 이렇게 많이 올라왔다. 4월은 한 주 한 주가 다르다. 이제 숲에 들어서면 제법 꽉 찬 기분을 느끼게 된다. 조금 있으면 꽃향기가 진동하고, 벌레들과 날파리들이 들끓고, 그늘과 바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되겠지. 새순이 제법 자라서 거의 모양을 갖춰 나무들을 동정하기가 한층 수월해졌다. 까치박달나무와 서어나무 새잎이 어찌나 보들보들하고 예쁜지 모른다. 이날 주인공은 비목나무다. 꽃은 아직 이르지만 잎을 손으로 자르니 상큼한 향이 진동한다. 비목나무 향을 맡으면 봄이 왔음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초피나무도 많이 보인다. 잎을 문지르니 역시 향이 온몸을 휘감는다. 고광나무, 고추나무, 노린재나무, 층층나무, 산뽕나무가 보이고 철쭉이 피었다. 그리고 분꽃나무 발견. 수목원 말고 산에서 분꽃나무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길마가지나무가 그렇듯이 분꽃나무도 눈으로 보지 않아도 향으로 나무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만큼 향기가 진하다. 쇠물푸레나무 꽃잔치가 시작되었다. 매년 보는 꽃이지만 볼 때마다 속절없이 매료된다. 코를 갖다대니 연한 향기가 난다. 산딸기와 덩굴식물의 계절이다.

명성대로 야생화가 풍부하다. 봄철 야생화는 북쪽으로 뻗은 계곡에 많은데 이곳이 딱 그렇다. 애기송이풀과 노랑무늬붓꽃은 몇 개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건 내가 찾는 눈이 어두워서 그런 것이고 블로그를 보니 제법 곳곳에 서식하는 모양이다. 나는 초행이고 이왕 온 김에 정상까지 올라가야 하므로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만호봉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기 전에 앵초 군락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1년 만에 만나니 모든 것이 다 반갑다. 앵초와 헤어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삼거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고 야생화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 돌배나무를 만난다. 동해바다가 멀리 보인다. 신기하게도 자두나무가 이 높은 곳에 있다.
by 비창 | 2019/04/24 18:56 | -오르다 | 트랙백 | 덧글(0)
벚꽃의 계절
마이산 가기 좋은 계절이 있다. 은수사 뒤편으로 변산바람꽃이 피는 3월, 탑영제 주변으로 늦은 벚꽃이 피는 4월, 탑사 바위 절벽을 타고 능소화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7월. 이중에서 나와 가장 인연이 멀어 보였던 벚꽃 시즌에 마이산을 찾았다. 함께 가는 동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벚꽃도 만개했으면 했는데 올해는 꽃샘추위로 꽃 소식이 늦다. 전국에서 벚꽃놀이가 끝나면 그제야 마이산 벚꽃이 시작되는데 아직도 우리 동네에 꽃을 떨구지 않은 벚나무가 많다. 주차장에 내리니 벚꽃이 절정이다. 하지만 탑영제의 벚나무들은 며칠 더 기다려야 한다. 저수지 쪽으로 고개를 숙인 꽃과 그 아래 비치는 물, 그 너머로 보이는 바위산, 이 셋이 어우러져야 마이산 벚꽃의 풍경이 완성되는데 하나가 아직 모자란 것이다.

탑사에 도착.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돌탑들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오늘은 능소화부터 찾는다. 능소화가 피는 절이야 많지만 절벽에 딱 붙어서 올라가는 탑사의 능소화는 아우라가 남다르다. 아직은 이파리도 나기 전이라 바위에 나무가 붙어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니 아래의 영신각을 집어삼킬 기세로 뻗어 있다. 선운사 입구에 있는 송악과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크기도 나이도 거기에는 못 미친다. 이어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줄사철나무를 만난다. 이 녀석도 덩굴식물이라 바위를 뒤덮고 있다. 푸릇푸릇한 새잎이 막 올라와서 보는 눈이 시원하다. 줄사철나무 사이로 흰 꽃망울이 살짝 보이는데 매화말발도리다. 확실히 올해는 꽃이 늦다.

은수사로 올라가면서 청실배나무가 꽃이 피었을까 조마조마하다. 하얀 꽃망울이 반짝거린다. 막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전에 왔을 때는 벚꽃 시즌은 끝났고 배나무는 절정이어서 이르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이다. 청실배나무 역시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 대접받는 존재는 세상에 나무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 본격적인 오름길. 천황문에서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길은 전에는 없었던 길이다. 시원하게 조망이 열리지만 푸른 신록을 보기에는 조금 이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마이산의 매력이 가장 빛나는 계절이 지금이지 않나 싶다. 다시 내려와 한참을 걸어 비룡대에서 왔던 길을 돌아보며 여정을 정리한다. 왼쪽으로 연이어 뻗은 다섯 봉우리가 눈에 띈다. 삿갓봉인가 보다. 반대편으로 돌아서면 저 멀리 광대봉이 보인다. 원래는 합미산성에서 출발하여 광대봉으로 올라오는 것이 마이산 산행의 정석이다. 그러니 나는 아직 마이산의 절반밖에 걷지 못했다.
by 비창 | 2019/04/18 23:28 | -오르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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