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산성과 강천산 단풍
남쪽으로 온 김에 단풍 산행으로 어디가 좋을까 저울질하다가 강천산을 골랐다. 하지만 단풍만 보고 가기는 아쉬워서 금성산성을 보는 것이 좋겠다 싶어 담양에서 차를 타고 리조트에서 내렸다. 은목서가 아직도 남아서 매혹적인 향을 피우고 있고 팔손이나무가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뜨렸다. 광나무 열매가 예쁘다. 열매를 보니 정말 쥐똥나무랑 닮았다. 은목서, 팔손이, 광나무는 어디를 가든 정원수로 쉽게 만날 수 있다.

주차장에서 임도로 들어서자 대나무 숲이 남쪽 지방임을 알린다. 숲속으로 파고드는 아침햇살이 예쁘다. 맞은편으로 우뚝 솟은 바위산이 보인다. 추월산이다. 고도를 차츰 높이자 바위 중턱에 암자가 보인다. 추월산 왼쪽으로는 병풍산이 보이고 그 사이로 능선들이 쭉 이어져 있다. 성문으로 들어서는데 부드러운 곡선으로 뻗은 돌담이 햇빛에 반짝반짝 빛난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가 참으로 근사하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낙엽 소리도 좋고 공기도 달콤하고 무엇보다 날씨가 환상적이다. 성문을 걸어가면서 발 아래 풍경을 바라보는 맛이 최고다.

저 멀리서 산들이 그리는 곡선이 아름답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곳은 고작 반야봉과 무등산이 전부다. 집에 와서 사진들을 분석해서 다른 산들도 알아냈다. 반야봉과 노고단 오른쪽에 내려앉은 산은 남원의 고리봉. 그 옆으로 한참 따라가면 동석산이 보인다. 그 뒤로 보이는 것은 통명산이다. 무등산 쪽으로 좀 더 이동하면 조계산과 모후산이 흐릿하게 보인다. 반대편으로 돌아보면 올봄에 올랐던 회문산이 있을 터인데 어딘가 했더니 왕자봉 왼쪽에 있는 산이다. 능선은 이미 단풍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계곡은 이제 막 시작이니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산허리의 단풍은 지금이 절정이다.

강천산 계곡으로 내려서자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진다. 비싼 카메라를 손에 든 사람도 종종 보인다. 여기는 사람 손길이 많이 들어간 산행지다. 인위적으로 가꾼 단풍나무는 물론이요, 인공저수지, 인공폭포, 그리고 구름다리까지. 청량산, 대둔산, 월출산의 구름다리는 산행의 경로에 자연스럽게 놓이지만, 강천산의 구름다리는 오로지 구름다리를 보기 위해 올랐다가 내려와야 한다. 포항 내연산의 전망대와 비슷하다. 이곳을 보려면 경로를 이탈해야 한다.
by 비창 | 2018/11/03 17:53 | -오르다 | 트랙백 | 덧글(0)
불갑산의 참식나무
꽃무릇 산행지로 너무도 유명하고, 변산바람꽃을 시작으로 보춘화, 새우난초, 약난초, 나도수정초, 뻐꾹나리 등 철마다 다르게 피는 희귀 야생화로도 유명한 영광 불갑산. 나는 꽃무릇 잔치도 끝나고 야생화도 거의 다 들어간 11월에 왜 이곳을 찾았을까. 참식나무 군락지를 보기 위함이다. 녹나무과 난대수종 참식나무의 북방한계선이 불갑산이다. 참식나무 꽃이 10월에서 11월에 핀다고 하는데, 진도 첨찰산에서 10월 중순에 핀 것을 확인했으니 지금쯤이면 불갑산에도 피었겠지 하고 온 것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꽃이 보이지 않는다. 전일암 올라가는 길에 참식나무가 이렇게 많은데 어째 하나도 보이지 않는지. 빨간색 열매도 달렸고 겨울눈도 달렸지만 꽃은 저 아래 불갑사 담장에서 본, 이제 막 올라오는 암꽃이 전부다. 북방한계선이다 보니 다른 곳보다 늦게 올라오나 보다.

참식나무 군락지 옆은 그늘이 져서 으스스한데 나무를 휘감고 올라가는 녀석들이 많다. 마삭줄, 송악, 아이비가 보인다. 송악은 작년 요맘때 선운사에서 처음 보았다. 이제 막 꽃이 올라온다. 조금 늦게 왔다면 만개한 송악과 어쩌면 참식나무 꽃도 만났을지 모른다. 아이비는 잎 생김새가 송악과 비슷한데 결각이 져 있다. 백화등도 여기 있다고 하는데 마삭줄과 차이를 잘 모르겠다. 마삭줄은 능선 내내 자주 보이는 걸로 봐서 남쪽 지방에 흔한 모양이다.

비자나무가 많다. 남쪽 산 계곡은 비자나무가 원래 많은지 여기가 특별한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많은 비자나무는 처음 본다. 개비자나무도 종종 있다. 같은 산에서 나란히 보니 차이가 확연하다. 그러고 보니 선운산과도 식생이 살짝 겹쳐 보인다. 나도밤나무를 동악산에서 보고 여기서 다시 본다. 능선에는 소사나무가 많다. 금정산에서 보고 처음이다. 예덕나무도 있다. 수리딸기는 지천에 깔렸다.
by 비창 | 2018/11/03 17:16 | -오르다 | 트랙백 | 덧글(0)
황매산의 가을
인기 순위로 치자면 열 손가락 안에 들 황매산. 철쭉으로 워낙 유명한 곳이지만 집에서 멀고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무엇보다 사람 북적이는 것이 싫어서 황매산에 온다면 봄이 아니라 가을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무엇보다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모산재가 궁금했다.

영암사지에서 출발,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올라 돛대바위에 오른다. 모산재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이자 황매산의 화룡정점이다. 황매산 줄기가 남쪽으로 동쪽으로 이어지다가 돛대바위에서 절벽으로 떨어진다. 모산재 정상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더 절경이다. 가파른 절벽 위에 돛대가 위태롭게 걸려 있고 왼쪽 아래로 저수지가 입을 벌리고 있다. 운해라도 깔리는 날에는 황홀한 그림이 펼쳐질 듯.

정상에서 뚝 떨어졌다가 다시 오름길을 오르다 보면 저 멀리 황매산 정상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어떻게 이토록 넓은 평원에 저런 거대한 바위가 솟아났을까. 오늘 내가 걸어야 할 길이 한 눈에 보인다. 정상을 넘어 삼봉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가 올지도 모르는 날씨여서 불안하다. 초행이라 시간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탁 트인 곳이어서 눈으로는 멀어 보여도 경사가 심하지 않아서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워낙 넓어서 어디서 야생화를 찾아야 할지 몰랐다. 나는 당연히 정상 쪽에 야생화가 많을 줄 알고 그곳에 집중하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베틀봉 근처에 물매화, 쓴풀, 앉은좁쌀풀이 많다고 한다. 정상 근처의 평전은 땅이 메말라 자주쓴풀만 보였고 온통 억새였다. 결국 쓴풀과 그 귀하다는 흰자주쓴풀은 못 보았다. (경력이 쌓이면 지형을 읽을 줄 알아야 하건만.) 그래도 물매화가 드문드문 있었고 자주쓴풀은 제법 많았다. 무엇보다 예뻤다. 명성산이나 남한산성에서 보던 자주쓴풀보다 더.

비슷한 시기에 찾아서 그런지 황매산은 비슬산과 비슷한 면이 많다. 비슬산도 대견봉 아래에 제법 넓은 평전이 있고 그곳에 참꽃이 집단 서식해 봄이면 인산인해를 이룬다. 비슬산도 천왕봉 정상 쪽은 제법 바위산의 면모를 보인다. 무엇보다 가을 식생이 비슷하다. 두 산에서 거의 똑같은 야생화가 관찰되었다. 비록 비슬산에 자주쓴풀과 물매화는 없지만. 황매산은 규모가 커서 야생화의 밀집도가 많이 떨어진다.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서 시간 여유를 두고 꼼꼼하게 봐야 한다. 그리고 비슬산만큼 나무가 다양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여기 계곡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이 정도 규모라면 분명 깊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을 텐데.
by 비창 | 2018/10/05 15:36 | -오르다 | 트랙백 | 덧글(0)
금목서
순전히 금목서를 보러 진주에 갔다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금목서가 여행의 주요 목적이었던 것은 맞다. 백서향나무와 더불어 향기의 으뜸을 다툰다는 금목서. 꽃향기가 귀한 가을에 꽃이 피고 피어 있는 기간이 짧아서 더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남쪽 지방에서는 흔한 관목이라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것도 버킷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 작년에 한발 놓쳤던 기억이 있어서 더 절실했는지도 모른다.

경남수목원에서 입구로 들어가 5분 만에 찾았다. 향도 끝내주지만 색감도 참 좋다. 그 흔한 팻말도 달고 있지 않은 걸 보면 여기서는 누구나 이름을 아는 친숙한 녀석임이 분명하다. 수목원을 한 바퀴 돌고 내려오니 연못가에서 또 만났다. 여기는 나무도 많고 팻말도 달려 있고 옆에 친구 은목서도 있다. 은목서는 금목서보다 보름 정도 늦다고 알고 있는데 성급한 녀석은 벌써부터 봉오리를 벌렸다. 향이야 말할 것도 없고.

다시 시내로 들어가 진주성에 갔다. 여기 호국사에 커다란 금목서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공휴일인데다 유등축제가 있어서 시내 사람들이 죄다 몰렸나 보다. 정문 반대편에 있는 호국사까지 인파를 뚫고 가서 금목서를 보고 예정에 없던 유등축제도 보았다.

이튿날 아침 터미널로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향기가 난다. 돌아보니 금목서다. 황매산을 가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는 곳에서 시간이 조금 남아 마을을 한 바퀴 도니 또 익숙한 향이 난다. 여지없이 금목서다. 산행을 마치고 산청으로 내려와 저녁을 먹으려는데 또 금목서 향이다. 성당 옆에 제법 큰 금목서가 어둠 속에서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이렇듯 이틀에 걸쳐 금목서를 다섯 차례 만났다. 남쪽에서는 금목서가 상당히 흔한 나무임에 틀림없다. 이 멋진 향과 작별하고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by 비창 | 2018/10/05 14:52 | -오르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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